Feel 1996년 11월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삶을 꿈꿉니다

오미순 기자



  기타와 봉고를 치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마술을 부리는 신세대 한의사 정민기 씨.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최경은씨. 이들 부부의 삶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돈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삶은 지치고 고단할 수 밖에 없지만 삶의 목표를 충실한 생활로 정한 이들 부부의 삶은 유리처럼 투명하기만 하다.


나 - 정민기

  정민기씨는 어렸을 때부터 한약 냄새를 맡고 자랐다. 한의사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흥미로웠다. 하늘, 땅,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고 자연의 이치를 알고 싶었다. 천문기상학과, 지질학과, 해양학과 즉 하늘, 땅, 바다와 관련된 학문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이 세가지를 모두 포함한 학문이 한의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광대학교에 진학,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시험 기간 동안 시험을 보지 않고 흑산도행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1주일 동안 봉사 활동을 하고 학교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의학의 발달은 때로는 인간성을 말살하기도 하지만 한의학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신 수양이 되고 학문이 원숙해짐을 느낀다. 정민기씨는 대학 졸업후 아버지가 일궈놓은 터전에 '늘고운 한의원' 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젊은 한의사가 못 미더운지 병원 안까지 들어왔다가 그의 앳된 얼굴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는 환자도 있었다. 모두들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재치가 넘치는 신세대를 좋아하지만 한의원 원장만은 예외다. 그 역시 한의원 원장이라는 직함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정민기 씨는 어렸을 때부터 명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고 요즘도 명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마음이 있기에 병이 생긴다고 믿는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한 명 진료한 다음에는 잠깐 동안 명상에 잠겨 머리를 맑게 한 후 다음 환자를 진료한다. 환자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의 진료 원칙은 맑은 정신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것이다.

  정민기씨는 구체적으로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예 독신으로 살든지 아니면 늦은 나이에 결혼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독신을 고집하지는 않았지만 누구와 함께 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지난해 2월 13일 한 환자의 진료를 맡으면서 결혼관은 깨지기 시작했다. 위장이 좋지 않아 친구의 소개로 '늘고운 한의원' 을 찾은 최경은시는 정민기 씨의 환자이자 정민기 씨의 인생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나- 최경은

  불문학을 전공한 최경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굳이 회사에 취직 할 생각도 없었고 자기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다. 그러던 중 사회에서 점차 고립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YWCA'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최경은 씨는 소비자 고발 센터와 입양아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봉사 활동에 한창 재미를 붙여서 활동하던 중 위가 아파 '늘고운 한의원'을 찾았다.

  원장선생님이 생각보다 젊었지만 믿음을 주었다. 2개월 동안의 진료가 끝나갈 무렵 젊은 원장은 '술을 할 줄 아느냐' 고 물어왔고 최경은씨는 '잘한다'고 대답했다. 진료가 끝난 어느 날 최경은 씨는 한 장의 초대장을 받았다. 정민기씨가 동생의 조각 작품전에 와달라고 보낸 것이였다. 인사동에서 조각전을 구경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뒤풀이를 했다. 한의원 원장과 환자가 아닌 젊은 남자와 여자로, 그들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남매의 장녀인 최경은 씨에게 결혼은 환상적인 꿈 이전에 현실이였다. 하지만 정민기 씨를 만난 뒤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것저것 따지고, 앞뒤 잴 시간도 없이 정민기라는 남자가 가슴에 들어왔다. 항상 동심에 젖어 꿈꾸듯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을 가진 남자,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고 다방면에 끼와 재능을 가진 남자, 세상사는 즐거움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남자. 최경은 씨는 정민기 씨를 만난 후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길을 걸을 때도 앞만 보고 걷는 최경은 씨. 정민기 씨는 그의 옆에 서서 길을 걸으면서 땅을 보는 법, 하늘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최경은 씨의 경직되고 고정된 사고는 한 남자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갔다.

  최경은 씨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재미있게 공부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모두 영어를 무척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최경은 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우리-정민기와 최경은

  인사동에서 첫 데이트를 가진 후 3일 만에 정민기 씨는 최경은 씨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이 여자와 결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이다. 정민기 씨는 부모님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도 자르고 교회에도 나갔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장남이 결혼을 한다고 하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자르지 않겠다던 머리도 자르고, 교회에도 나가니 부모님이 제일 먼저 기뻐하셨다.

  이제 결혼한 지 7개월째에 접어든 정민기/최경은 부부. 연애 때와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가정이라는 둥지의 포근함,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최경은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로 1주일 동안 신혼 여행을 갔을때 마술 구경을 하게 됐는데 최경은 씨는 마술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그것을 본 정민기씨는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최경은 씨 몰래 '에디슨 매직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마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술이 오가는 자리에서 정민기 씨의 마술은 진가를 발휘한다. 마술 외에도 정민기 씨는 기타, 봉고, 오카리나, 장구, 하모니카 등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룬다. 음악에도 관심이 깊다. 이들 부부의 재산 목록 1호는 '마틴 D45'기타이다. 모든 기타리스트들이 한 번쯤 갖기를 소망하는 기타 마틴 D45. 정민기 씨는 가끔씩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킨 D45로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12일, 정민기 씨와 최경은 씨는 한의원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친한 친구 몇 명을 초대하고 정민기 씨가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작은 음악회였다. 콘서트가 끝나고 정민기 씨는 손수 만든 감사패를 최경은 씨에게 선물했다. 감사패의 내용은 콘서트를 열기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이들 부부는 살아가는 동안 재미있는 이벤트를 많이 열 생각이다. 사는 것의 목적을 돈 벌기에 둔다면 그처럼 삭막한 삶도 없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민기 씨는 마흔 살까지만 진료를 하고 그 이후는 명상을 이용한 진료 센터를 열 생각이다. 지금도 명상에 대한 여러 가지 공부를 계속 하고 있는데 모든 병의 원천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인간의 마음은 피폐해지고 그 마음이 질병이 된다고 생각한다. 질병이 없는 세상, 맑고 투명한 삶을 꿈꾸는 정민기/최경은 부부.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이 누구보다 강한 이들 부부의 하루하루는 유리처럼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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